[연재 한국 모터스포츠 역사①] 파리-다카르에서 한일 레이서 대결까지 펼쳐져

1988년은 국내 모터스포츠도 불과 1년 그리고 서너 경기도 치르지 않은 초보였음에도 폭발적인 붐업을 예고하며 인기종목으로서 자리를 굳힐 채비를 마쳤다. 이런 움직임들은 당시 활동했던 이들의 선구자적인 시각에도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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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모터스포츠의 문은 ‘모험과 도전의 대서사시’로 불리며 ‘죽음의 랠리’라는 공포를 심어 준 ‘파리-다카르 랠리’였다. 프랑스에 거주하던 최종림 씨가 87년 도전하기도 했던 이 대회에 국내에서는 정식으로 팀을 꾸려 출전한 것. 한국에서 만든 차와 한국인으로 짜여진 랠리팀이 달린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컸다. 한국랠리회(회장 손세중)는 이 대회 참가를 위해 아시아자동차(현 기아자동차)의 4WD 랠리카 2대와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 등 7명으로 팀을 꾸렸다. 이 랠리카는 직렬 4기통에 1,985cc 엔진을 얹어 70마력의 휘발유 엔진을 사용했다. 이들은 자동차의 제작부터 완성까지 직접 참가해 차의 구조와 매커니즘을 익혔고, 국내 오프로드 코스에서 테스트를 겸한 훈련을 소화해 냈다. 한국자동차와 순수 한국팀으로서 최초로 참가할 이 대회에서의 목표는 완주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목표는 성공했다.

1월 1일 프랑스 교외의 베르사이유궁을 출발해 아프리카의 다카르까지 1만3,000km를 달린 이 대회는 28개국에서 자동차 370대, 트럭 110대, 바이크 210대 총 690대가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완주차는 121대에 지나지 않았고, 7명이나 목숨을 잃을 정도로 ‘지옥의 랠리’라는 명성(?)을 확인해 줬다. 한국팀은 정식 기록에서는 모두 탈락하는 등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하기도 했다. 523호차(박정룡, 홍군희)가 ‘환상의 코스’로 불리는 보르주 오마드리스-타만 라셋 구간에서 엔진고장으로 일주일 만에 주저앉은 가운데 525호(이향천, 이재영)도 엔진 고장으로 9구간에서 제한시간 초과로 탈락했다. 하지만 525호는 사흘 동안 수리를 마친 뒤 경기성적에 관계없이 계속 달려 22일 골인지점에 도착하는 등 감동의 도전기를 선사했다.

국내에서의 첫 경기는 5월 13~14일 충남 서산의 청포대 특설 코스에서 열렸다. 월드카 레이서 클럽(회장 남기상)이 주최한 이 대회는 40명의 드라이버들이 참가했다. 2.4km의 트랙은 직선이 900m에 이를 정도로 길어 스피드 레이스를 보여주는 데 충분했고, 다양한 코너가 더해지면서 테크닉에도 관건을 뒀다. 현대, 대우, 기아가 맞붙은 이 대회의 특징은 2,000cc 이하의 차가 출전한 것. 경기방식은 예선전, 패자부활전, 준결승전, 결승전으로 나누어 예선 탈락자에게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줬다. 이 대회에서는 기아 콩코드를 몰고 출전한 박정룡(당시 기아산업 연구소, 현 어울림 모터스 감독, 아주자동차대학 교수)가 우승컵을 안았다.

이날 경기는 1,000여명의 관중이 카레이스의 세계로 빠져든 가운데 입상자에게 푸짐한 상품이 돌아갔다. 1위는 프라이드 1대, 2위에게는 대림 오토바이(125cc), 3위는 텔레비전을 부상으로 받았다. 또한 임시 트랙이었음에도 깃발을 꼽아 트랙을 명확하게 구분지어 준 점과 속도경기 방식으로 진행된 점, 약속대로 시상이 이뤄진 점 등에서 전년에 비해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경주차 및 드라이버의 안전에 관해서는 여전히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대부분의 드라이버들이 바이크용 헬멧을 착용했고, 승용차용 안전벨트에 롤케이지도 없어 이에 대한 대책이 개선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제2회 대회는 이로부터 두 달 뒤인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32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대회 방식은 앞선 경기와는 달리 1,500cc 이하급과 무제한급으로 나눴다. 경기장은 2.4km 구간은 그대로인채 직선 구간을 조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결승전은 1,500cc 이하는 30바퀴인 72km를 달려 승부를 겨뤘고, 무제한급은 15바퀴 36km를 돌아 우승자를 가렸다. 31일 오전 결승을 치른 1,500cc급은 프라이드의 운전대를 잡은 박정룡과 황운기(당시 대한화재 부림대리점 대표), 허상범(당시 건축자재도매업)이 박빙의 승부를 펼쳐 트랙에 모여든 3,000여명의 관중들에게 스릴 넘치고 다이내믹한 모터스포츠의 세계를 선사했다. 레이스는 결국 박정룡, 허상범, 황운기가 차례로 들어오면서 막을 내렸다. 박정룡은 이날 우승으로 ‘월드 9000 스피드 경기대회’ 2연패를 거두며 부상으로 프라이드 2대를 차지했다. 무제한급에서는 황운기가 강태주(기아산업 연구소 근무)를 제치고 우승컵을 안았다.

제3회 ‘그랑프리 코리아 자동차경주대회’는 6월 18~19일 인천 송도의 특설 경기장에서 열렸다. 23대가 참가한 이날 경기는 23명이 참가한 가운데 황운기(대한화재 부림대리점 대표)가 우승컵을 안아 89년 인디 500마일 레이스 참관 티켓을 부상으로 받았다. 국내 모터스포츠 최초의 국제경기도 열렸다. 11월 6일 인천 송도 특설트랙에서 88년을 마감하며 일본인 레이서 3명을 포함한 31명의 레이서가 자웅을 겨룬 것. (주)한국모터프로젝션(대표 이준성)이 주최하고 생활경제신문사가 주관한 이 대회에서는 이창복(푸마)이 선수권을 차지했다. 기대를 모았던 일본 드라이버들은 각각 7, 21, 23위를 하는데 머물렀다. 그러나 이 대회가 갖는 의미는 남달랐다. 외국의 레이서를 초청해 함께 레이스를 벌이며 그들의 기량을 접해볼 기회를 가진 것과 드라이버들의 협조와 주최측의 진행도 매끄러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기록과 안전 부문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88년 파리-다카르 랠리로 문을 연 대한민국 모터스포츠는 한-일 카레이스로 막을 내렸다. 87년에 비해 경기도 늘어났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드라이버나 팀들의 대응도 착실하게 이뤄졌다. 불과 2년 만에 거둔 성과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드라이버 및 관중에 대한 안전대책은 성장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도 큰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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