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한국 모터스포츠 역사②] 국제 규정 적용 시작, 일본 적극 진출

파리-다카르 랠리로 문을 열고 한일 레이스 대결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88년이 저물고, 국내에 모터스포츠가 도입된 지 3년을 맞는 89년이 희망차게 떠올랐다. 지난 2년 동안 국내에서 열린 경기는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고, 사실상 몇 회가 열렸는지 정확하게 아는 이들도 드물다. 그만큼 대회가 열리고 참가한 것에 대한 드라이버와 팀의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회의 주최자들도 단발성 이벤트로 접근하다보니 체계적인 관리를 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조건에서도 불구하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자동차 전문지의 열정이 있었기에 몇 회의 기사가 게재되고, 사진으로 기록을 남길 수도 있었다. 국내 자동차 전문지의 원조인 <자동차생활>은 모터스포츠 초창기부터 열의를 갖고 이를 기사화하는 데 앞섰다.

87~89년까지 <자동차생활>이 기사화 한 것은 국내 및 해외를 포함해 20여 건이 넘는다. 특히 이 잡지는 당시로서는 우리에게 생소했던 F1을 비롯한 해외 모터스포츠를 적극 소개했다. 여기에다 일본 드라이버를 초정해 모터스포츠 관련 강좌를 열기도 해 국내 모터스포츠인들의 안목을 넓혀주는 등 미디어의 순기능적인 면에서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황운기, 윤철수 씨 일본 무대에 도전
<자동차생활>이 관심을 갖으면서 모터스포츠인들의 동정도 심심치 않게 지면에 오르내렸다. 89년 국내 모터스포츠는 몇몇 드라이버들이 앞장서서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뒀다. 즉 국내는 물론 해외(일본)의 모터스포츠를 몸으로 체득하면서 이를 국내에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일기 시작한 것. 첫 테이프는 황운기 씨가 끊었다. 89년 3월 18~19일 야마구치켄 미네시 근교에 자리잡은 서일본 서킷에서 열린 ‘올 저팬 투어링카 300km 레이스’에 앞서 열린 닛산 마치 원메이크 레이스에 국내 드라이버로서는 최초로 참가한 것. <자동차생활>에서는 이를 일본 현지 취재로 보도했다. 황운기 씨는 2.815km의 서킷을 20바퀴 돌아 승부를 겨루는 레이스에서 23명 참가자 중 17위로 골라인을 밟았다. 이처럼 황운기 씨가 일본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기노시타 노보루 씨와 닛산 스포츠카 클럽의 야마나시 회장, 선빔 클럽의 미타라시 씨 등의 도움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이 해 9월에는 또 한명의 드라이버가 일본 무대를 노크했다. 윤철수 씨는 앞선 황운기씨와 마찬가지로 일본 선빔 팀의 경주차를 몰고 닛산자동차 마치 원메이크에 출전한 것. 윤철수 씨는 이 대회에서 27명의 참가자 중 12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대회가 끝난 후 윤철수 시는 “모터스포츠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 같아 매우 기쁘다”며 “더 많은 드라이버들이 이런 무대에서 경기를 해봤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모터스포츠에 대한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 2년 동안 경기는 영종도와 청포대를 중심으로 펼쳐졌었다. 하지만 89년 첫 경기는 부산에서 열렸다. 한국자동차경기 부산연맹(회장 이두태)이 주최하고부산 에이스원 레이싱팀의 주관한 ‘제1회 89 부산 에이스원 그랑프리’가 부산 북구 엄궁동의 낙동강변에서 열린 것. 참가자는 국내 7개 레이싱팀 소속의 19명과 개인 참가자 5명을 포함한 24명이었다. 국내 모터스포츠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린 이 대회는 배기량 2,000cc 이하의 국산차가 참가할 수 있었고, 개조와 관련해서는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않았다. 기아의 프라이드가 14대로 가장 많았고, 르망과 제미니, 포니 등도 눈에 띄었다.

결선은 2.5km의 트랙을 25바퀴 달려 승부를 겨뤘다. 이 대회에서 볼카노 팀 소속으로 프라이드의 운전대를 잡고 참가한 이명목 씨가 폴 투 피니시를 거둬 6번의 도전 끝에 우승컵을 차지하면서 상금으로 200만원을 받았다. 당시 이명목 씨가 몰았던 프라이드는 노멀 상태의 차를 몰아 탁월한 드라이빙 테크닉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 원메이크 경기 최초로 열려
89년에는 한국 모터스포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국내 최초로 세계자동차연맹(FIA) 경기방식을 도입한 레이스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5월 20~21일 한국 사회체육진흥회 모터스포츠연맹이 주최하고, 일간스포츠가 후원한 ‘89 챌린지컵 자동차경주대회’는 총 47명의 드라이버가 현대, 대우, 기아 등 메이커별로 나눠 원메이크 방식의 레이스를 치렀다.

14대가 참가한 현대 라운드는 포니2의 운전대를 잡은 조기택 씨가 우승컵을 안았고, 정용호 씨와 김갑진 씨가 차례로 골라인을 밟아 포디엄에 서는 감격을 맛보았다. 14대가 참가한 르망 라운드는 윤철수, 이주석, 한계남 씨가 1~3위를 했다. 하이라이트였던 기아 라운드는 전 차종이 프라이드로 말 그대로 원메이크 경기였다. 한 차례 이상 우승을 맛본 황운기, 이창복, 이명목 씨가 맛붙어 박진감 넘치는 레이스를 펼친 가운데 이명목 씨가 우승컵을 안았다. 황운기 씨는 줄곳 선두를 유지했으나 아쉽게 한 바퀴 반을 남겨놓고 리타이어하는 아픔을 곱씹었다. 이창복, 권병락 씨가 포디엄을 각각 메웠다.

3년째를 마무리하는 한국 모터스포츠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남겨놓으면서 막을 내렸다. 물론 이 해에도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차 개조에 대한 범위와 안전장치에 관한 규정의 미비, 관중에 대한 안전대책, 스탭들의 운영미숙과 계측 시스템의 미구비, 일정 지연 등이 그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보급대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본격적으로 서킷 건설이 검토하고 있다는 낭보도 들렸다. 이런 소식이 들려오면서 모터스포츠 관계자들은 서킷이 생기면 모터스포츠가 예상보다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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