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한국 모터스포츠 역사➃]안전 확보되지 않는 자동차 경주는 ‘사상누각’

1991년은 분명 기회의 해였다. 87년부터 90년까지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국내 모터스포츠가 비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4년 동안 총 19경기가 열렸고, 경기방식이나 진행자의 수준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91년 국내 모터스포츠는 '안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해였다. 사진은 올시즌 KIC 오프로드 특설경주장에서 열리는 KIC컵 오프로드 그랑프리. 사진=KRC

1991년 국내 모터스포츠는 ‘안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해였다. 사진은 올시즌 KIC 오프로드 특설경주장에서 열리는 KIC컵 오프로드 그랑프리. 사진=KRC

메이커의 관심도 크게 늘었다. 기아자동차는 아산만 시대의 개막과 때를 같이 해 부지 5만평에 길이 3.5km의 임시 포장 트랙을 만들어 4~5경기를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여기다 총 100만평의 부지에 1,200억 원을 들여 4.5km의 정규 코스를 만들려는 청사진도 제시하면서 모터스포츠 시대를 활짝 열 것으로 기대를 모았었다.

한국스포츠클럽, 한국모터스포츠연맹, 한국모터프로젝션 등의 단체들의 이합집산이 진행되는 가운데 탄생한 한국자동차협회(KAA)는 정부의 인가를 받은 공식단체로 모터스포츠 활성화의 주역이 될 것이라는 기운도 퍼졌다. 장밋빛 청사진이 드리워진 가운데 문을 연 91년 한국 모터스포츠. 하지만 모터스포츠는 녹녹하지 않았다. 기아자동차의 프로젝트는 날개가 꺾였고, 모터스포츠 자체도 성장통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91 코리아 챌린지 모터 레이스는 5월 12일 경기도 안산시 종합운동장부지 특설경기장에서 열렸다. 한국모터스포츠연맹과 월간 <트래픽 저널>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 대회에는 23개 클럽에서 90명의 드라이버들이 참가한 국내 자동차 경기사상 최대 규모의 시설과 장비를 활용해 국내 자동차경기의 수준을 올리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그러나 이런 의도와는 달리 뜻밖의 찬물(?)을 끼얹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안전’을 확보하지 않은 모터스포츠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을 줬다. 즉 자동차경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었으나 이에 대한 안전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관중이 다칠 경우 속수무책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경기 중에 드라이버들이 가벼운 부상을 당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경기를 관람하던 관중들이 다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사고는 원메이크 대우 라운드에서 발생했다. 르망 레이서의 운전대를 잡고 출전한 안병환 (마루아치)과 박서림의 경쟁으로 인해 발생했다. 두 드라이버가 선두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안병환의 르망이 본부석 앞에 설치된 보호벽을 들이받고 본부석 오른쪽 펜스지역으로 튕겨 나간 것. 이 장면을 보기위해 앞쪽으로 나왔던 관중들은 피할 겨를도 없이 9명이 사고를 당했다. 곧바로 팀 관계자와 안전요원들이 부상자들을 고대 안산병원 등으로 후송시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피해자 중 크게 다친 사람이 없었다는 것.

이 사고는 당시 모터스포츠 관계자들에게 많은 것을 부분을 일깨워 줬다. 즉 완벽한 안전시설을 갖춘 경기장, 매끄러운 경기진행, 드라이버들의 페어플레이 정신, 관중들의 질서 있는 참관자세, 정부와 메이커의 충분한 지원 등이 있어야 국내에서도 진정한 자동차 경기문화가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여겨서다. 주최측은 사고의 영향으로 경기를 무기한 연기했다.

10월 5~6일에야 한국모터스포츠연맹은 영종도 특설경기장에서 경기를 열고 한 해를 마무리 했다. 이 경기는 5월 대회보다 참가자가 절반 이상 준 48대만이 참가했으나 오랜만에 재개돼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경기는 그룹 A와 원메이크(현대, 기아, 대우)로 나눠 치렀다. 이날 레이스 경과 최고 종목인 그룹A 클래스는 황운기(발보린)가 우승컵을 안았고, 현대전 정성조(파라), 대우전 김승필(개인), 기아전 신용규(개인)이 각각 시상대 정상에 섰다.

91년 국내 모터스포츠의 하이라이트는 몽산포 300km 내구 레이스였다. 10월 19일과 20일 충남 태안군 몽산포해수욕장 특설 트랙에서 열린 이 대회에는 국내 20개 레이싱 팀에서 120명의 드라이버들이 참가해 거리에 따라 그룹 A(200km), N-1 그룹(100km), N-2-a,b(40km) 클래스 등 4개 부문에서 기량을 겨뤘다.

대회 결과 기아 프라이드의 운전대를 잡은 그룹 A의 김한봉(펠롭스)이 우승컵을 손에 넣었고, N-1은 정성조(파라), N-2-a 홍준호(남아), N-2-b 이응규(남아)가 각각 시상대 정상에 섰다. 이 대회도 그동안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스타트 라인에서의 ‘검차’, 진행요원과 드라이버가 구분되지 않은 점, 경기 시간의 진연 등이 불거져 나왔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드라이버들의 운전 테크닉과 경기진행 솜씨가 훨씬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은 대회로 꼽힌다.

모터스포츠 발전의 필수요소인 슬라럼 대회도 자주 열렸다. 한국자동차협회 스포츠위원회가 주관하고 부산지부가 주최해 4월 7일 부산의 수영만 특설 경기장에서 치른 제1회 슬라럼 부산대회에는 108명이 참가했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날 남자부에서는 프라이드를 몰고 나온 홍성열(호크)이 우승컵을, 여자부에서는 원형신(보라매)이 각각 우승컵을 안았다. 특히 이 대회에는 레이스에 참가했던 드라이버는 출전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둬 레이싱 팀 소속의 초보입문자들과 일반인들이 경쟁했다.

6월 2일 올림픽공원 벨로드럼 특설경기장에서 개최된 제2회 슬라럼 선수권전은 국내 모터스포츠 발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대회로 평가 받았다. 한국자동차협회가 주관하고 필립모리스가 후원한 이 대회에는 23개팀 98명의 드라이버가 참가해 개인과 단체전으로 나눠 기량을 겨뤘다. 개인전에서는 정성조(파라)가 우승컵을 안은 가운데 단체전 우승 트로피마저 가져가 이 해 최고의 팀으로 떠올랐다. 여자 드라이버로는 김태옥이 감투상을 받아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다.

국제신문사와 한국자동차협회 부산지부 ‘Z’ 클럽이 공동 주최한 제3회 슬라럼 선수권 대회는 18개 팀 등에서 127명이 참가해 기량을 겨뤘다. 부산 수영만 올림픽공원에 코스를 만들어 승부를 펼친 대회에서는 개인전 박정룡(볼카노), 단체전 마루아치가 각각 우승했다.

11월 1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제1회 ‘자동차경기 짐카나대회’에서는 남자 일반부 장용선(보라매), 여자 일반부 오선자(마루아치)가 각각 우승했다. 11월 17일 용인 자연농원(현 에버랜드) 중문 주차장에서 열린 제2회 ‘전국자동차 슬라럼 챌린지’에서는 남자부 박정룡(볼카노), 여자부 원형신(보라매)가 우승컵을 안았다. 이날 경기에는 탤런트 김용건 씨등 8명의 연예인이 출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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