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GP 명예의 전당① 제임스 클라크] 월드 챔피언 2회, 통산 25승의 매력 넘치던 천재 드라이버

농촌 소년의 작은 취미에서 시작해 최정상 드라이버로 한 시대를 풍미하기까지 짐 클라크의 모터스포츠 인생은 천재의 그것과도 같이 자신의 재능이 시키는 대로 흘러왔다. 하지만 숨겨져 있던 그의 재능을 모두 포용한 모터스포츠는 어느 날 문득, 시샘을 부리듯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던 천재 드라이버 생명을 앗아갔고, 이에 팬들은 물론 그의 라이벌들도 숨죽여 아픈 가슴을 달래야 했다. 여리고 우유부단해 보이기만 했던 어수룩한 영웅이었지만 자동차 앞에서 만큼은 당해낼 사람이 없었던 그를 모터스포츠 팬들은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1963년과 65년 F1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제임스 클라크는 통산 25승을 거뒀다.

1963년과 65년 F1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제임스 클라크는 통산 25승을 거뒀다.

수줍음 뒤에 숨은 열정

제임스 클라크 주니어는 잉글랜드와 접경지역의 스코틀랜드 베릭셔에서 1936년 3월 4일, 4녀 1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곳은 클라크 일가 소유의 넓은 농장과 여기저기 거닐어도 좋을 만큼 큰 집이 있고, 혈통 좋은 양떼들이 풀 뜯는 모습을 어디에서라도 볼 수 있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에든버러에서 사립학교를 다니던 13살 즈음 클라크가 처음으로 책과 잡지를 통해 접한 인터내셔널 모터스포츠 따위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곳이다. 당시 그는 크리켓을 하고, 하키에 꽤나 재능을 보이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점차 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운전에 대한 열망이 슬슬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닌 다음에는 자동차에 손대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던 부모님 몰래 집안의 자동차를 끌고 나가 농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이 호기심 많은 어린 천재 드라이버를 어떻게 탓하겠는가. 시간이 흘러 클라크 농장의 트랙터를 몰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고, 열일곱에 학교를 졸업하고 농장으로 돌아와 일을 시작하면서 드디어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1956년 면허증이 생긴 짐은 곧이어 ‘썬빔 탈봇’을 장만해 지역 랠리 시합에 출전하는 등 아마추어 모터스포츠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모터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부자 친구들 덕분에 ‘우승 클럽 레이스’의 각종 스포츠카를 타볼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바람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그는 곧 그 모임을 나온다.

1958년 클라크는 브랜즈 해치에서 늘씬한 ‘로터스 엘리제 쿠페’를 탈 기회를 얻게 되는데, 이것은 동시에 로터스의 창립자 C. 채프먼의 눈에 띄는 계기가 된다. 채프먼은 그를 로터스 포뮬러 주니어에 참가 시켰고, 뛰어난 기량을 펼쳐 보인 그는 곧바로 1960년 F1 시즌 후반부에 투입된다.

그러나 그 해 벨기에 그랑프리는 F1 역사에서도 손꼽힐 만큼 끔찍한 사고로 얼룩졌던 경주였고, 이에 클라크는 몹시도 충격을 받았다. 스파프랑코샹 서킷을 막 질주하기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 C. 브리스토가 충돌사고를 크게 일으킨 것이다. 뒤이어 달려오던 클라크는 트랙에 엉망으로 널브러진 몸뚱어리는 겨우 피할 수 있었으나 그의 로터스는 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던 피로 범벅이 되었다. 게다가 몇 랩 지나지 않아 그의 친구이자 팀 동료인 A. 스테이시가 자신의 얼굴로 날아든 새와 충돌하면서 중심을 잃고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고들로 인해 그는 이 서킷을 소름끼치도록 싫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크는 그 후 스파프랑코샹에서 4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처음으로 풀 시즌에 참가한 1961년 모나코 전에서 페라리의 W. 본 트리프와 충돌 사고가 났다. 이 사고는 그의 잘못도 아니었고, 자신은 크게 다친 데도 없었지만 트리프와 14명의 관중들의 사망으로 이어지면서 클라크는 큰 충격을 받고 은퇴를 결심했다. 하지만 팀 오너이자 절친한 친구 채프먼의 끈질긴 설득으로 다시 서킷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 이어진 네 시즌 동안 클라크의 로터스는 쾌속 질주를 멈추지 않았고 차체 결함을 일으키지 않는 한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채프먼의 최신 섀시와 클라이맥스의 V8 엔진의 결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도를 냈으나 불안정 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단적인 예로 1962년 시즌 마지막 레이스에서 연료가 새는 바람에 챔피언을 눈앞에서 놓쳤고, 1964년에도 같은 이유로 타이틀 도전에 실패했다. 그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클라크는 폭풍 같은 기세로 1963년 7승을 거두며 첫 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고, 1965년 열 경기 중 6승을 거두면서 두 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클라크는 해외에 얼굴이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1965년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 경주에서 승리했을 때,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그를 주목하고 나섰다. 그가 가진 두드러진 재능을 탓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공식석상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그를 아끼고 또 존경하던 수많은 선후배 드라이버들이 있었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당시 함께 활동하던 자신감 넘치고 외향적인 G. 힐이나 J. 스튜어트와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콕핏에 앉은 그는 침착함 그 자체이고, 스스로를 완벽하게 컨트롤 하는 드라이버였다. 하지만 콕핏 밖으로만 나오면 손톱 물어뜯는 버릇에 음식점에서 메뉴를 선택하는 일조차 어려워하던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사고

클라크는 늘 결혼해서 가족들과 함께 스코틀랜드의 자신의 농장에 눌러 사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 하고는 했지만 결혼을 하지는 않았다.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아내에게 집에 있는 날보다 밖에 있는 날이 훨씬 많은 남편을 늘 혼자서 기다리게 하는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클라크와 채프먼은 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다. 채프먼은 짐의 정직함과 겸손함 그리고 인간성을 높이 평가했으며 드라이버로써의 재능만큼 인격도 훌륭하다고 말해 왔다. 머신의 문제점이나 결함을 지적할 때도 직접 하기보다 늘 채프먼을 거쳐 전달할 정도로 겸손했다. 그는 이런 스피드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는 물음에 자신도 잘 모르겠다며 순진한 미소로 답하곤 했다. 정작 머신의 결함들 까지도 컨트롤할 수 있는 드라이버이면서도 말이다.

1966년 로터스의 머신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클라크는 이적을 결심하기도 했으나, 친구에 대한 그의 의리가 다시 한 번 인내심을 발휘하도록 했고 그 다음 시즌 로터스에 복귀한다. 1968년 시즌 첫 경기에서 우승을 거두면서 클라크는 25승을 기록했고, 이 기록은 판지오의 통산 최다승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판지오가 그랬던 것처럼 클라크는 실수가 적었고 사고를 내는 일도 매우 드물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죽음이 더욱 충격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968년 4월 7일 독일 호켄하임에서 벌어진 F2 레이스에 참가 중이던 클라크는 타이어 이상으로 균형을 잃고 충돌해 사망한다. 이 사고로 클라크의 수많은 팬들과 전 세계 모터스포츠 관계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토록 모터스포츠에 열광하던 뜨거운 심장들이 그의 죽음으로 인해 동시에 얼어붙었다. 앞으로 다시는 모터스포츠를 보지 못할 것만 같은 아픔이었다. 이 사고로 가장 아끼는 드라이버이자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C. 채프먼은 망연자실 했고, G. 힐은 짐의 환한 웃음을 어떻게 잊어야할지 모르겠다며 슬픔을 감추지 않았다.

 

챔피언: 2회(1963, 1965) 그랑프리 스타트: 72회/ 그랑프리 우승: 25회/ 폴 포지션: 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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