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해민의 인디레이싱리그 도전기①] “레이스 뿐 아니라 팬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어야 겠다”

‘오토레이싱’은 국내 드라이버 최초로 미국의 인디카 레이스에 도전하고 있는 최해민 군이 고군분투기를 게재합니다. 그 동안의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최해민 군은 세계 모터스포츠의 최고봉 F1 그랑프리와 쌍벽을 이루는 인디레이싱리그(IRL)의 바로 아랫단계인 ‘인디라이츠’까지 소화하면서 올해 IRL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디 500’의 입성을 위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오토레이싱은 최해민 군이 인디카 드라이버로 우뚝 서기를 희망하며 독자들도 그 응원에 함께 나서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담담하게 자신의 심경을 밝히며 써내려가는 도전기는 최해민 군의 여력이 미치는 범위에서 연재를 이어갈 것임을 약속드립니다(편집자).

최해민 군이 국내 드라이버 최초로 인디레이싱리그에 진출하기 위한 도전을 시작한다.

최해민 군이 국내 드라이버 최초로 인디레이싱리그에 진출하기 위한 도전을 시작한다.

에피소드1

비행기 마일리지만 늘어가고 통장 잔고는 계속 줄고 있던 겨울의 끝자락. LA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인천공항 라운지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침에 트레이닝으로 한 로잉과 버피로 심신이 좀 지친상태. 몇 일전 나의 도전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만나 뵈었던 지인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광대가 되어야 한다.” 나의 도전에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뭔가를 보여주고 팬들과의 공감대를 이끌어야 내야 한다는 취지로 하신 말씀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 최해민은 말하는 걸 안 좋아하고 내성적인 편인데 광대라…, 혼란스러웠다.

 

무엇을 보여줄지, 어떻게 보여줄지…

그동안 스폰서십을 위해 회사에 컨택할때 또는 기자들에게 나의 도전을 소개할 때 나는 미국 레이스에 데뷔했던 2007년부터 지금까지 보고 배우고 느낀 것을 그들이 먼저 알아주기만을 바래왔던 것 같다. 공감하는 팬, 마니아가 없다보니 회사나 기자, 에이전트들의 적극성도 떨어질 수밖에.

하지만 그들이 모른다고 해서 나의 도전 그리고 나의 발자취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그들을 우리로 바꿔야 할 시기라 생각이 되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

자리를 일어나며 올해는 레이스 뿐 만아니라 팬들과 소통에도 적극적인 좀 달라진 내가 되어 보기로 결심했다. 팬이 없으면, 관중이 없으면,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없으면 카레이서 최해민은 존재 할 수 없으니까. 이런! 비행기가 딜레이 되었군.

변하지 않는 나의 이코노미석으로 이동. 뭐 콕핏보다 넓으니까 괜찮아…비행기가 LAX에 가까워질수록 이틀 뒤 인디라이츠 테스트가 걱정 되었다. 인디라이츠 경주차를 마지막으로 탄 것은 작년 11월 오스틴 테스트, 약 3개월이 지났다. 한국에 있을 때도 많이 고민하고 했지만 늦은 계약과 여러 가지 제반 사항을 혼자서 해결하다 보니 준비가 부족했고 그것이 걱정이 된 것이다.

피닉스 인터내셔널 레이스웨이가 창 밖으로 보인다.

피닉스 인터내셔널 레이스웨이가 창 밖으로 보인다.

LAX에는 짧은 시간에 도착했다. 보통은 뉴욕으로 가기에 그 3시간 남짓의 비행시간 차이가 나에게는 정말 견디기 쉽지 않은 시간이다. 비교적 가벼운 몸으로 공항에서 간단히 허기를 달래고 피닉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피닉스는 이전에 레이오버만 몇 차례 했을 뿐 나에게는 낯선 도시였다. 햇빛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기억만. 비행 내내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 사막에 어떻게 레이스 트랙을 지었을까? 피닉스 인터내셔널 레이스웨이는 1964년에 개장을 했다고 한다. 와우. 대한민국 카레이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내 지난 1월, 올 시즌 각오를 다지기 위해 인디애나폴리스 모터 스피드웨이를 방문 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미국행 비행기에서 본 영화가 ‘국제시장’이였다. 1950년대의 한국은 영화 속 주인공 ‘윤덕수’의 인생처럼 쉽지 않았다.

그리고는 인디애나폴리스 모터 스피드웨이에서 1911년부터 인디500 시작과 함께 1950년대를 주름잡았던 평균시속 200km가 넘는 최첨단 레이스 카와 그들의 부흥기를 확인하였다. 그만큼 한국과 미국 카레이싱은 비교하기 어려운 서로 너무나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로드 카레이싱에 시작은 90년대 중반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99년 데뷔하여 미국을 비롯한 세계 선수들과 겨뤄보겠다고 여기에 온 것이다. 눈을 똑바로 뜨고 있으니 창밖으로 트랙을 찾을 수 있었다. 저 멀리 아래로 조그맣게 보였지만 타원형 트랙을 보니 벌써부터 목과 어깨가 긴장을 한다.

렌터카로 기아자동차 쏘울을 선택했다.

렌터카로 기아자동차 쏘울을 선택했다.

공항에 도착, 렌터카를 픽업해서 숙소로 향했다.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 한국차는 렌터카의 대세가 되었다. 드라이버들이 500마력 인디라이츠, 700마력 인디카를 타도 트랙에 갈때는 현대 쏘나타, 벨로스터를 탄다. 그리고 나는 좀 더 경제적으로 기아 쏘울을 선택했다. 호텔도 돈 많은 남미 드라이버들은 다운타운을 선호 하지만 나는 트랙에서 가장 가까운 싼 호텔을 찾는다. 진정한 드라이버에게는 항상 돈 들어 갈곳 이 줄을 서고 있으니까.

긴 여정 끝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 줄까? 어쩌면 레이스보다 풀기 어려운 숙제일지도 모른다. 조금씩 변화를 줘 보자

“잘할 수 있을꺼야!”

(7472)

Be the first to comment on "[최해민의 인디레이싱리그 도전기①] “레이스 뿐 아니라 팬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어야 겠다”"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


WP2Social Auto Publish Powered By : XYZScripts.com